칼빈은 1535년 프랑소아 1세에게 바치는 박해받는 자들의 신앙을 변호하였는데 이 글은 다음해 『기독교강요』 첫판의 헌정문으로 자리잡는다. 칼빈은 이 글에서 박해받은 무리들의 교회관을 서술하는데 무형교론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의 제네바 사역의 실패는 유형교회에 대해 재인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제2판 『기독교강요』는 불가견적 양상을 강조했던 초판에서 서서히 보이는 교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모성성(母性性)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프랑스 피난교회를 섬기면서 부처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칼빈은 그 이후 1541년부터 1561년까지 20년 동안 제네바교회법규를 완성했다.
오늘날 이러한 칼빈의 개혁신학에 근거한 집합체로서의 교회에서 왜 조직이 필요하고 정치와 법규가 필요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고민없이 오늘날 정치교권화 되어 본래의 장로회 정치제도의 취지가 상실되어가고 있다.
특히 당회는 목사와 장로라는 두 정치교권의 충돌은 교회를 무너지게 한다. 장로회 정치원리에 대한 독특한 당회를 일반 국가나 시민사회의 단체법과 동일하게 접근하려는 것은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훼손하게 되었다. 본고는 당회의 정체성과 정통성, 법통성 이해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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