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론 4]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 본문∙히브리서 2:1~4

한국교회법연구소 | 기사입력 2017/10/29 [11:38]

[히브리서 강론 4]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 본문∙히브리서 2:1~4

한국교회법연구소 | 입력 : 2017/10/29 [11:38]
[히브리서 강론 4]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 본문∙히브리서 2:1~4 

히브리서 2장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 단어는 히브리서 1장에서 언급한 말씀에 대한 어떤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단어이다. 무슨 이야기를 한참 한 후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든가,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같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미 1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자이다. 둘째는 피조물인 천사들은 예수님께 경배한 자들이지 경배의 대상은 아니다. 셋째, 천사보다 우월하고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런 말씀을 히브리서 1장에서 강조하면서 말씀한 내용이다. 즉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했다고 보면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왜 천사와 비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월하고 탁월하다고 주장해야만 했는가? 천사는 피조물이지만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분이시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죽었다는 현혹시킨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천사를 예수님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결국 천사를 숭배하고 경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히브리서 기자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이 1장 말씀의 핵심 내용이다. 1장이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제 2장에서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1장에서 살펴 본대로 천사는 피조물이지만 예수님은 창조의 중보자이시다.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볍게,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취지의 말씀이 오늘 본문 2장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이다. 구체적으로 본문 말씀을 살펴보자.    

1. 그러므로 유념하라(1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1절)    

어떤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고 하자. 이웃집 아저씨보다도 더 못한 사람으로 하찮게 대했다. 옆에 있던 나를 잘 아는 분이 그 사람에게 야단을 친다. ‘이 분이 어떤 분인데 그렇게 함부로 대하느냐’라고 한다. 그러면서 설명해 주면서 “그러므로 앞으로 이 분을 공손하게 대하라”고 했다. 마치 이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가 바로 본문 1절 말씀이다.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들은 것”은 1장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말씀이다. “들은 말씀을 유념하라”에서 ‘유념’이란 한문표기이다. 유념(留念)은 ‘마음에 두고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헬라어에서 유념이란 ‘더 많은’, ‘더욱 빈번히’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리해 보면 들은 복음의 말씀을 계속, 더 많이, 자주 마음에 두고 생각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늘, 어려울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잔잔히 평화가 찾아온다. 마음의 안정과 위로가 찾아온다. 말씀을 자주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하되 항상, 늘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잡념이 사라진다.     

잡념이 사라지고 주님의 말씀만이 남게 된다. 그 말씀이 운동을 한다. 역사가 임한다. 치료가 임한다. 위로가 임한다. 우울증이 사라진다. 악한 영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한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즐거움이 가득하다. 강 같은 평화가 임한다. 그 때 용서의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다.     

그리고 1절 후반절에 보면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고 했다. ‘우리’ 안에는 ‘내가’ 존재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떠내려가다’는 말씀은 나의 실수로 떠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끄러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부주의로, 내가 소홀히 취급함으로, 나의 실수로 하나님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떠내려가 버린다면 안된다. 미끄러져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도록 해서는 안된다.     

시편 73: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왜 미끄러질 뻔했든가, 그것은 오만했기 때문이라고 시편은 말씀한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게 된다.

첫째,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 그래야만 듣는 자가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 복음을 듣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누군가가 전해주어야 한다. 우리들은 바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즉 나팔수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복음을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교만하고 오만할 때 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고 만다. 

셋째, 구원의 복음이 나에게 머물도록 해야 한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나에게 머물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나에게 역사가 일어난다.     

2. 보응을 받았거든,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2~3절)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2~3절)    

본문 말씀의 핵심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라는 말씀이다. 큰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등한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만약에 등한히 여기면 보응을 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리해 보자.    

첫째, 천사들로 하신 말씀을 어겨도 불순종하면 형벌을 받는 법인데,
둘째, 우리가 모든 날의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셋째,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넷째, 이 큰 구원은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안 된다. 여기서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무관심하다’, ‘멸시하다’, ‘태만하다’, ‘주목하지 않다’라는 의미가 있다. 복음에 대해서도 등한히 여기면 안되지만 교회에 대해서도 등한히 여기면 안된다.    

이 구원은 분명한 근거가 있다, 주님이 말씀하셨고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인하고 증명하여 말씀하신 내용이다.     

복음에서에서 자주 말씀하신 내용을 보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이 말씀은 ‘아멘 아멘’인데 이를 ‘진실로 진실로’라고 번역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내가 말한다. 이는 진실하다.’였다. 진실하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는가, ‘내가’이다.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진실하다. 진리이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확증한 진리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듣도록 전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이러한 전달자들에 의해 전해준 말씀에 의해 들었고 들은 말씀은 믿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성령께서 역사해 주셨다.    

3. 하나님의 증거,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역사(4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4절)    

4절 말씀은 3절 말씀과 연결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3절에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라고 했다. 4절은 들은 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증언해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령도 함께 증언해 주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구원의 도를 증거하시고 확고하게 하셨다. 이같은 구원은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함께하여 증언해 주셨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증거하셨다. 표적와 기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는 채웠노라.”고 했다.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제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도 성령이 듣는 자들의 마음에 역하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이 듣는 자들의 각 마음에 역사하시므로 이를 받아들이게 한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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